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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을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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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천
댓글 0건 조회 416회 작성일 25-08-2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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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을 쓰는가

어릴 적, 우리 동네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던 십자가 예배당은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얀 벽과 높은 종탑은 마치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것처럼 보였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특별하고 고귀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무엇을 믿는지, 예배당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저기에 뭔가 중요한 것이 있구나” 하는 막연한 동경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발걸음을 따라 교회로 향하곤 했다.

국민학교 시절이 되면, 크리스마스가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지프차를 타고 미군부대를 찾아가 위문공연을 하던 기억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빛나고 있다. 서툰 영어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며 손뼉을 치고 춤을 추던 순간,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선 듯한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어린이의 놀이가 아니라, 내게 있어 교회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과도 같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성장하면서 나는 교회를 떠났다. 청년이 되어 세상 속의 재미와 유혹에 빠져들었고, 교회는 내 일상에서 멀어졌다. 나는 스스로 종교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가만두지 않으셨다. 마치 길 잃은 양을 다시 불러들이듯, 내 삶의 한가운데에 신앙을 다시 세우셨다.

40대 초반, 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그 낯선 땅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던 중 다시 신앙의 길에 발을 들였다. 미국에서 맞이한 초신자 시절, 나는 무척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단순히 ‘열심’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 시간은 치열했고, 때로는 전쟁터와도 같았다. 사람과의 갈등이 아니라, 목회자들의 설교와 내가 직접 읽는 성경 말씀 사이에서 끊임없는 충돌과 번민을 겪었다. 설교 속의 하나님과 성경 속의 하나님이 너무 다르게 느껴져서, 방 안에 홀로 앉아 눈물로 씨름하던 시간이 많았다.

나는 갈급했다. 서점을 뒤져도 목마름을 채워줄 책은 보이지 않았고, 목사님께 물어도, 직분을 가진 어른들에게 물어도, 대답은 언제나 허전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교회에는 단계별로 신앙을 이끌어주는 ‘학년 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든 어느 날 갑자기 교회라는 공동체에 들어서면, 유치한 수준과 깊은 수준이 한자리에 뒤섞여 버린다. 초신자를 위한 성경공부나 제자훈련반이 있지만, 내용은 비슷비슷하고, 개인의 갈급함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사람들은 눈치껏 배우고 적응하며, 낯선 집단 안에 동화된다. 그 순간부터 목회자의 설교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세뇌’가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내 영혼의 앞길을 그 목사에게 맡겨도 되는가?”라는 질문조차 할 틈이 사라진다. 스스로 판단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한계와 눈치로 얻은 얕은 지식 속에 자신을 가둔다. 그 안에서 ‘지식’은 자라고, 동시에 ‘아집’도 자란다. 그래서 소위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모이면, 종종 다툰다. 자기 생각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내세우며, 심지어는 그 고집에 ‘순교자적’ 가치를 부여한다. 결국 다른 이를 정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귀에 맞는 설교를 찾아 헤맨다. 자신의 욕망을 대변해 주는 목사를 ‘좋은 목사’라 여기며, 입맛에 맞는 말씀만을 받아들인다. 심지어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방송이나 유튜브로 설교만 소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은 이미 이 현상을 경고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3-4)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 말씀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그러나 모든 이가 그런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실망 끝에 교회를 떠난다.

  •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하여 왔는데, 복이 없으니 떠난다.

  • “병이 나을 것”이라 믿었는데, 병이 낫지 않으니 실망한다.

  • “십일조를 드리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믿었는데, 오히려 가난해진다.

  • 생업까지 포기하고 교회에 헌신했지만, ‘얻는 것’이 없으니 무너진다.
     

이는 교회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탓이기도 하지만, 현실 교회가 스스로를 ‘미혹하는 집단’으로 보이게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거짓은 잠시 통할 수 있어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결심했다. 초신자 시절의 방황, 집사와 장로로서의 갈등과 투쟁,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경험과 체험을 통해 터득한 진실을 기록하여 전하고자 한다. 나는 ‘창조의 동산’에서 인간을 속여 타락하게 했던 사탄이, 오늘날 현실 교회를 어떻게 다시 장악했는지를 고발하려 한다. 동시에 예수가 원하셨던 ‘반석 위의 교회’를 세우는 초석을 남기고자 한다.

이 책은 기독교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시 살리려는 절규다. 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집합체다.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바로 서지 않으면, 그 집합체는 단지 종교 조직으로 전락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교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다시 살리려는 호소를 하고 싶다.

혹시 당신이 다음 중 한 사람이라면, 나의 고발과 체험이 신앙을 회복시키고 영혼을 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실망하고 교회를 떠난 분

  • 돈만 밝히는 교회가 이해되지 않는 분

  • 신은 없다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분

  • 무신론을 주장하지만 삶의 공허함을 느끼는 분

  • 교회조직, 성경, 신앙에 관해 궁금증이 많은 분

  • 교회에 다니지만 은혜가 되지 않는 분

  • 신앙이 자라지 않아 답답한 분

  • 아는 것은 많으나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는 분

  • 성령을 받고 싶은데 길이 보이지 않는 분

  • 성경은 읽지 않고 설교만 듣는 분

  • ‘복’을 받으려 교회에 왔으나 여전히 갈급한 분

  • 전도사, 목사로서 “이 길이 과연 옳은가?” 의문을 품은 분
     

바로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이 글은 종교와 투쟁한 끝에 남겨진 내 영혼의 파편이다.
육신의 조각이며, 눈물이자 울부짖음이다.
그러나 동시에 다시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자, 희망의 불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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